2025년 6월 5일, 체코 정부는 자국의 핵심 에너지 프로젝트인 두코바니(Dukovany) 원자력발전소 5호기에 대한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수주에 성공한 것으로, 유럽 원전 시장에서 한국형 모델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 분수령이자 상징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체코의 에너지 독립성과 탈탄소 전환 정책에 맞물린 이번 사업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한국의 기술력, 외교 전략, 산업 협력 모델이 총체적으로 평가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해당 계약의 주요 내용, 국제 입찰과정, 그리고 향후 한국 원전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한다.
계약내용: 두코바니 5호기 사업 핵심과 상세 구조
두코바니 5호기는 체코 남동부에 위치한 기존 원전 단지의 신규 노후 교체 프로젝트로, 2036년까지 기존 설비의 점진적 폐쇄가 예정된 가운데 체코의 전력 수급을 책임질 미래 에너지 핵심 시설이다. 계약 상대는 체코 국영 전력회사 ČEZ(체제트) 산하 두코바니 NPP이며, 사업 주관은 한국수력원자력이 맡게 된다. 계약 총액은 약 120억 달러(한화 약 16조 원) 규모이며, 공사 범위는 설계·조달·시공·시운전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EPC+O&M형 턴키 계약이다. 여기에 운영 초기 단계 기술이전 및 운영지원도 포함되어, 단순 건설이 아니라 체코 내 원자력 인프라의 기술 내재화도 지원하게 된다.
적용될 원전 모델은 APR1000으로, 이는 한국형 원전의 유럽 수출형 모델이다. 이 기술은 유럽사업자요건(EUR)을 충족한 모델로, 체코를 포함해 폴란드, 루마니아, 핀란드 등 유럽 다수 국가에서 도입 가능성을 열어 둔 상태다. APR1000은 내진성, 피동안전계통, 확장된 사고관리기능 등을 포함하며,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환경·안전 기준을 만족시킨다.
한수원은 전체 기자재 중 약 70% 이상을 한국 중소·중견기업으로부터 조달할 계획이며, 약 20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협력사로 참여한다. 체코 측과의 협정에 따라 현지 기업 참여 비율도 일정 수준 보장되며, 이는 체코 내 산업기반 강화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체코 산업부는 약 9,000개의 직접 일자리, 2만 개 이상의 간접 고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입찰과정: 국제 정치와 기술 경쟁의 복합 양상
체코는 2022년부터 두코바니 원전 5호기 건설 사업에 대한 국제 입찰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한국(한수원), 프랑스(EDF), 미국(Westinghouse), 중국(CGN), 러시아(Rosatom) 등 총 5개국 기업이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유럽연합과 NATO 동맹으로서 체코는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으며, 결국 정치적 리스크가 큰 러시아와 중국은 조기 배제되었다. 이로 인해 입찰은 실질적으로 한국과 프랑스 간 양강 구도로 재편되었다.
프랑스의 EDF는 EPR1200 모델을 제안했다. EPR 모델은 고출력 고안전성을 지닌 첨단 기술이지만, 프랑스 및 핀란드 내 건설 지연 사례가 단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비용 초과와 공정 지연이 반복되며 ‘계획 대비 신뢰성’에서 평가 점수가 낮았다.
반면, 한국의 한수원은 APR1400의 경험 기반을 바탕으로 개발한 APR1000을 제안했고,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프로젝트에서의 예정된 공기 내 완공 및 성공적인 운영 사례를 강조했다. 특히 APR1000은 유럽 기술표준에 맞춰 설계된 만큼 체코 당국의 검토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입찰 과정 중 한국은 기술력 외에도 강력한 외교적 지원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국가 연계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2023~2025년 사이 윤석열 대통령과 체코 총리 간 정상회담이 2회 이상 열렸으며, 산업부-체코 산업통상부 간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었다. 양국 간 에너지 기술 교류, 인력 교류 확대, 한국의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이 전략적으로 제시되며 기술을 넘어 ‘협력관계’가 강점으로 작용했다.
또한 체코 현지의 원전 교육기관, 기술연구소, 산업연합회와의 교류 확대도 입찰 과정 중 주도적으로 이뤄졌고, 이 모든 과정이 한수원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및 최종 계약 체결로 이어졌다.
한수원의 수주 의미: 한국 원전의 유럽 전환점
이번 체코 두코바니 5호기 계약은 한국 원전 산업에 있어 단순한 한 건의 수주가 아니라 유럽 전력시장 진입의 교두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APR1000은 이번 계약을 통해 유럽 최초의 준공·운영 사례를 갖게 되며, 유럽 내 타국 원전 수주 경쟁에서 ‘실적 기반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이로 인해 향후 폴란드(6기 신규), 루마니아(체르나보다 원전 증설),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으로 연쇄 수주 가능성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SMR(소형모듈원전) 기술에서도 한국은 체코와의 공동연구 및 개발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2040년까지 자국 전력의 40%를 원자력으로 채운다는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SMR과 대형원전을 병행 배치할 계획이다. 한국의 두산에너빌리티,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도 이번 체코 프로젝트를 계기로 유럽 내 원전 플랜트 EPC 시장에 동반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계약으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를 약 3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간접 산업 파급효과는 약 15조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원전 기술 수출은 기자재, 제어계통, 터빈, 구조자재, 소방·안전설비 등 고부가가치 산업군의 집약적 수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에도 상당한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론
2025년 6월 5일 체결된 체코 두코바니 원전 5호기 계약은 한국 원전 산업의 세계화, 특히 유럽 시장 본격 진입의 결정적인 사건이다. 단순한 원전 건설을 넘어 한국과 체코 간의 전략적 에너지 동맹, 기술 협력, 산업 상생 모델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다. 한수원의 수주 성공은 기술력, 외교력, 경제성과 국제 신뢰가 종합된 결과이며, 향후 연쇄 수주와 차세대 원전 기술 수출의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기술 공급국’이 아니라, 에너지 글로벌 거버넌스를 함께 이끄는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